12.3 계엄령과 한국 사회의 '파시스트적' 기질

2019년 이후 공개된 '12.3 계엄령 문건'은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그림자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 문건은 문민정부하에서도 여전히 군부 엘리트들이 비상 상황을 핑계로 민주적 질서를 무력화하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꿈꾸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 사회의 '파시스트적 기질'이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위협임을 경고한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군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심리적·문화적 구조 속에 깊게 뿌리내려져 있다.
12.3 계엄령 계획은 군사적 힘을 통해 사회 질서를 재편하고, 강제적인 통제를 통해 혼란을 잠재우려는 전형적인 파시즘적 대응이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내재된 권위주의적 유전자, 즉 ‘힘에 의한 질서 유지’를 선호하는 심리를 드러냈다. 이러한 기질은 오늘날에도 여러 형태로 표출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여섯 가지 핵심 특성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 강자 동일시: 권력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선망
12.3 계엄령 계획이 가능했던 가장 큰 배경 중 하나는 강자에 대한 무조건적 동일시와 선망이다. 군부 세력은 스스로를 국가 혼란을 정리할 유일한 강자로 인식했고, 일부 국민 역시 군부의 질서 유지 방안을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이러한 심리는 군사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힘 있는 자가 곧 정의'라는 왜곡된 가치관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유효하며, 대기업 총수, 정치 지도자, 유명 인플루언서 등 권력과 성공을 거머쥔 자들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이어진다.
2. 약자 혐오: 계엄령 하에 더욱 심화된 약자 배제
계엄령 시나리오는 사회적 약자와 반대 세력을 '질서 교란자'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전형적인 약자 혐오 현상의 극단적인 표현이다. 과거 광주 5.18 민주화 운동에서도 군부는 시민들을 '폭도'로 낙인찍고 무자비한 진압을 강행했다. 12.3 계엄령 계획 역시 사회적 다양성과 소수 의견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파시즘적 통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약자 혐오는 심화되고 있다. 복지 정책 반대,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혐오 발언, 외국인 노동자 배척 등 약자에 대한 공감보다는 배제와 혐오가 일상화되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연대의 붕괴로 이어진다.
3. 동조 강박: 권위적 통치에 대한 무비판적 순응
12.3 계엄령 계획이 현실화될 뻔한 배경에는 동조 강박이 존재했다.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순응은 민주적 토론과 이견 제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당시 일부 언론과 사회 지도층은 계엄령 가능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군사적 강압이 오히려 질서 유지의 정당한 수단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동조 강박은 인터넷 커뮤니티, 직장 문화, 교육 현장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침묵은 미덕’이라는 잘못된 인식, 다수 의견에 반대하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두려움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약화시키는 심각한 문제다.
4. 폭력성 및 공격성: 국가 폭력의 정당화
계엄령 계획은 폭력성과 공격성을 국가적 차원에서 정당화하려 했던 대표적 사례다. 국가 권력이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폭력은 가장 심각한 형태의 파시즘적 폭력이다. 이는 과거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에서도 반복되었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폭력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여전히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폭력이 물리적 형태에서 법적, 경제적, 심리적 폭력으로 진화하고 있다. 검찰권 남용, 공권력의 과잉 대응, 불공정한 법적 처벌 등은 제도화된 폭력의 현대적 변형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고, 국가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5. 흑백논리: 계엄령 논리의 극단적 이분법
12.3 계엄령 계획은 사태를 '질서를 지키는 자'와 '혼란을 야기하는 자'라는 극단적 이분법으로 단순화했다. 이는 전형적인 흑백논리의 산물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화하여, 폭력적 해결을 정당화하고 국민 내부의 분열을 조장한다. 정치적 반대자를 '적폐',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제거 대상으로 삼는 것 역시 이러한 논리 구조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한국 정치와 사회에서 이러한 흑백논리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서로를 극단적으로 비난하고,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없애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물이다.
6. 폭력에 대한 무감각: 국가 폭력에 대한 관대함
마지막으로, 12.3 계엄령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사회는 국가 폭력에 대한 일정 수준의 무감각을 보여왔다. 과거 독재 시절의 국가 폭력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고, 그 상처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반성과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감각은 현대에도 고스란히 이어지며, 공권력 남용이나 권력형 범죄에 대한 관대한 태도로 나타난다.
문화 콘텐츠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쉽게 발견된다. 폭력적 서사와 권위주의적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극단적 상황에서의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적 태도는, 폭력적 질서를 일상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12.3 계엄령 사건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파시즘적 기질을 내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다. 강자 동일시, 약자 혐오, 동조 강박, 폭력성, 흑백논리, 폭력에 대한 무감각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도전 과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가치의 실질적 내면화, 권위에 대한 비판적 사고, 약자와의 연대, 비폭력적 소통 문화의 확산이 필요하다. 또한, 과거 국가 폭력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에 대한 온전한 치유와 보상이 이루어져야만, 진정한 민주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