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사태 이후 한국 엘리트의 민낯

휴브리스(Hubris)는 인간이 신의 권위나 질서를 무시하고 오만하게 행동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주로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비극적 몰락의 원인으로 등장하며, 교만함으로 인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는 현대에도 권력과 성공에 도취된 오만한 태도를 비판하는 데 사용된다.

12월 3일, 우리는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날의 황당함보다 더 깊은 절망을 안겨준 것은, 그 이후 한국 사회의 이른바 '엘리트'들이 보인 행태였다. 객관적으로 부와 권력, 지식을 독점한 사회 지배층을 엘리트라 부른다. 하지만 여기에 '주의'가 붙어 엘리트주의가 되는 순간, 그것은 소수 특권층의 오만과 민주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로 변질된다. 12.3 사태 이후, 우리는 바로 그 엘리트주의의 민낯을 생생하게 확인했다.

12.3 사태가 드러낸 한국 엘리트의 민낯

사태 이후 벌어진 일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최고위 관료들, 장관들, 그리고 군복을 입은 장성들까지.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궤변과 허언, 위선으로 가득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무총리와 각료들은 사태 발생 초기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무력하게 침묵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는 '힘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들었다. 심지어 대통령에게 재가(裁可)를 요구하며 국방부 장관의 배석 여부와 같은 절차적 문제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군 장성들 중 사태를 주도한 이들은 명백한 군사 반란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숙군'(군 내부 정화)이나 '혼란 수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포장했다. 반란에 저항했던 소수의 충직한 장성들은 보복성 인사 조치나 불이익을 당했고, 그들의 항명은 조직 논리 앞에 묵살되었다.

법조계의 이상한 무리들, 특히 사태 관련자들의 변호를 맡은 이들은 법의 근본 정신보다는 기술적인 논리로 피고인들의 죄를 경감시키려 애썼다. 사법부의 일부 판결 역시 국민적 상식이나 정의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사법 신뢰를 흔들었다.

권력에 아첨하는 정치인들,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인들, 심지어 지식인이라 불리는 대학 교수들까지. 언론은 초기 정부 발표에 의존하거나 검열로 인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으며, '군사반란'을 '사태'로 축소해 부르는 등 사건의 본질을 흐리기도 했다. 일부 지식인들은 침묵하거나 뒤늦게 비판의 목소리를 냈지만, 권력의 편에 서서 곡학아세의 언어를 쏟아낸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저토록 뻔뻔하게 상황을 정당화하고 곡학아세의 언어를 쏟아낼 수 있었을까? 그들의 행태는 한국 사회 지배 엘리트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얼마나 천박하고 저질스러운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그들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오만함의 발현이었다.

미국 트럼프 현상과의 기이한 평행선: '휴브리스'와 '휴밀리티'

이러한 한국의 상황은 멀리 미국에서 벌어진 트럼프 현상과 기이한 평행선을 이룬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트럼프의 등장을 엘리트들의 '휴브리스(Hubris)'와 대중들의 '휴밀리티(Humil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휴브리스는 단순히 오만함을 넘어선, 거의 정신병적 수준의 광적인 오만함이다. 샌델은 미국 엘리트들이 보여준 이 오만함이 트럼프 현상의 뿌리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오만한 엘리트들을 보며 다수 대중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굴욕감과 수치감, 즉 휴밀리티가 트럼프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핵심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 변화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그들이 트럼프에게 열광한 것은, 계급적 증오보다 엘리트들에 대한 굴욕감과 분노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지난 수십 년간 불평등은 심화되어 왔다. 트럼프는 바로 그 엘리트들을 공격하며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질렀고, 힐러리 클린턴이나 바이든 같은 인물들은 엘리트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한국 사회의 공명: 엘리트의 오만과 대중의 굴욕감

지금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뉴스를 틀 때마다 소위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은 광적인 수준의 휴브리스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은 그들을 보며 "우리를 대체 어떻게 보기에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가?"라는 어마어석마한 굴욕감을 느낀다. 12.3 사태 이후 각계 엘리트들이 보인 행태는 바로 이 지배 엘리트층 전반에 걸친 민주주의 의식 부재와 오만함을 드러냈다. 이는 국민에게 깊은 상처와 배신감을 안겼고, 불평등과 소외감과 맞물려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엘리트들의 진정한 반성과 자성이 없다면, 이러한 사회적 피로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엘리트의 '휴브리스'가 만들어낸 대중의 '굴욕감'이라는 심각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불평등과 소외감을 해소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과연 한국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휴브리스'를 인정하고, 자신들 때문에 고통받는 대중의 '휴밀리티'에 귀 기울일 수 있을까? 저는 아직 그 답을 알 수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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