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 그들만의 왕국이 흔들린다

요즘 대한민국 사법부를 보노라면, 김두식 교수의 역작 『불멸의 신성가족』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한때 감히 넘볼 수 없는 성역처럼 여겨지던 법원이라는 거대한 성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신호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국회 청문회 불출석 논란부터, 지귀연 부장판사의 불미스러운 술접대 의혹까지, 일련의 사태들은 '그들만의 왕국'이라 비판받아 온 사법 카르텔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김 교수가 갈파했듯, 한국 법조계는 스스로를 '신성가족'이라 칭하며 폐쇄적이고 특권적인 집단을 형성해왔다. 사법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이들은 마치 중세 귀족처럼 대대손손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신 세대만큼은 특권을 누릴 자격을 얻었다고 여겼다. 법원과 검찰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짜인 단단한 카르텔 안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그들만의 리그를 운영해온 것이다. 외부의 비판이나 견제에는 '사법부 독립'이라는 신성한 가치를 방패 삼아 철저히 빗장을 걸어 잠갔다.
그런데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의 행보는 사법부의 그 '신성한 독립'이 사실은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 회피'에 가까웠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증폭시킨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인 행보는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선거일을 불과 열흘 앞두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했으며, 통상 수개월이 걸리는 심리를 일주일 만에 마무리하고 선고를 강행했다. 이례적인 속도전과 절차 파괴는 결국 대선 정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야당은 사법부가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최고 사법기관의 수장은 국회라는 국민 대표 기관의 출석 요구에 응하는 대신 헌법과 법률 수호를 명분으로 '버티기'를 선택했다. 사법부 독립을 지킨다는 그의 항변은, 국민들 눈에는 오히려 특권적 지위를 이용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로 비쳤을 가능성이 높다. 사법부 수장마저 정치적 공격의 표적이 되고 스스로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 이 상황이야말로, 사법부가 더 이상 '성역'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바로 지귀연 부장판사의 '룸살롱 술접대' 의혹이다. 주요 정치 사건을 다루는 법관이 불미스러운 장소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 자체가 충격적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사법부 내부에서 '성골' 또는 '에이스'로 통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간 '그럴 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어왔던 '신성가족'의 도덕성이, 그 구성원 중에서도 촉망받던 엘리트의 스캔들에 의해 정면으로 부정당한 셈이다. 사법부의 해명은 '추상적 의혹'이라며 발을 뺐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제 식구 감싸기'로 비칠 뿐이다. 이 사건은 사법부의 폐쇄적인 카르텔이 썩어가는 도덕적 해이를 내부에서부터 배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강하게 들게 만든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부장판사 사태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사법부의 특권 의식과 폐쇄성, 그리고 외부 견제와 감시로부터 벗어나 있던 카르텔 구조가 마침내 그 민낯을 드러내며 외부 세계와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더 이상 국민의 신뢰라는 든든한 토대 위에 서 있지 못하다. 그들이 쌓아 올린 성채에는 이미 깊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틈새로 불신과 비판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다.
사법부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금의 위기를 발판 삼아 국민 눈높이에 맞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갖춘 공적 기관으로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신성가족' 신화에 계속 기대다 결국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인가. 조희대·지귀연 사태는 후자의 가능성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경고하는 섬뜩한 서막이다. 사법부 스스로 환골탈태하지 않는다면, '불멸의 신성가족'은 이제 역사책에나 기록될 구시대의 유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은 지금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실현해가는 전환기에 서 있다. 민주공화국이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권력기관은 국민의 통제와 감시를 받는 공적 기관으로서 책임과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는 정치 체제이다. 이는 더 이상 특권과 신분으로 통치되지 않고, 정의와 법치 위에 평등하게 세워진 공동체를 의미한다. 사법부 또한 이 정의의 공동체에 속하는 기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위기는 바로 그러한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성장통일 뿐이다. 국민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공적 기관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않는다. 이러한 깨어있는 시민의식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