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적 중도 시대 개막? 민주당 주류화와 국민의힘의 과제

요즘 한국 정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흥미로운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유능한 중도'니, '변혁적 중도'니 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걸 보면, 어쩌면 우리 정치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 아닐까? 특히 최근 사상 최고를 기록한 사전투표율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이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웅변한다. 기존 정치에 대한 피로감, 그리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간절한 기대감이 뒤섞여 발현된 결과일 것이다. 과연 이 흐름이 단순한 유행어에 그칠지, 아니면 우리 정치의 물줄기를 바꿀 거대한 흐름이 될지, 그 핵심에는 다름 아닌 **더불어민주당의 '주류화'**라는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당, 비주류 딱지를 떼다

민주당은 참 오랫동안 '비주류'라는 딱지를 달고 살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그랬다. 늘 기득권과 싸우고, 사회의 변방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역할이 민주당의 숙명이자, 어쩌면 정체성처럼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투사'의 이미지는 강했지만, 때로는 그 강렬함이 외연 확장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시기를 거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총선에서 세 번 연속 이기며 당당히 '기호 1번'을 꿰찼다는 건, 이제 민주당이 우리 사회의 명실상부한 주류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명한 신호다. 단순히 의석수 몇 개 더 늘린 정도가 아니다. 국민 다수가 민주당의 정책과 비전에 공감하고 지지한다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형성되었다는 의미다. 더 이상 '투쟁하는 비주류'가 아니라, 사회의 중심에서 목소리를 내고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는 '주류'가 된 것이다. 주류 정당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권력 획득을 넘어, 국가 운영의 무거운 책임과 더 넓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짊어지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변화의 선봉에 선 인물이 바로 이재명 대표다. 민주당 안에서도 한때 '비주류'로 분류되던 그가 놀라운 '학습 능력'을 보여주면서, 이제는 확고한 주류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과거 '강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그가 민생과 실용을 강조하며 중도층으로의 확장을 시도하는 모습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최근 그가 내세우는 '중도 보수론'이나 과거 보수 성향 인사들과의 만남, 영입 시도는 이러한 '유능한 중도' 전략의 실천적인 모습이다. 예전 같았으면 "왜 진보를 버리고 중도로 가느냐"는 거센 반발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당원과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큰 동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이제 주류가 됐으니, 품이 넓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바다는 강물을 마다하지 않는다. 깨끗한 강물이든 혼탁한 물이든, 모든 물을 품어 안는다. 이처럼 주류는 너그러워야 한다는 미덕을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민주당이 과거의 이념적 경직성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포용적인 정당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그 변화의 중심에 이재명 대표가 서 있는 셈이다.

'변혁적 중도', 새로운 길을 만들다

이 지점에서 백낙청 선생이 창비 이번 여름호 권두 대담에서 언급한 '변혁적 중도' 개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백 선생은 '변혁적 중도'가 단순히 좌우 이념을 어중간하게 섞는 '회색 지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민생 안정과 한반도 평화라는 두 가지 변혁적 과제를 통해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적극적인 중도를 의미한다. 여기서 민생 안정은 단순히 경제 성장의 수치 놀음을 넘어 양극화 해소, 사회 안전망 강화, 기후 위기 대응 등 국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한반도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 대결 구도를 넘어선 실질적인 평화 체제 구축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과제들은 기존의 낡은 이념적 틀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숙제인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바로 이 이재명 대표가 '변혁적 중도'를 이끌고 형성시키고 있다고 평한다. 그러면서 유 작가는 이를 '유능한 중도'라고 명명했다. '유능한 중도'는 좌우를 통합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어설픈 중도는 양극단의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찢겨나가기 십상이지만, 능력이 있는 중도는 좌우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끌어당겨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이는 단순히 타협점을 찾는 소극적인 자세를 넘어, 각 진영의 장점을 과감히 흡수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더 나은 대안을 창조해내는 능동적인 리더십을 의미한다. 이재명 대표의 행보가 바로 그런 '유능한 중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민생과 평화라는 거대하고 변혁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좌우를 가리지 않고 협력과 포용의 폭을 넓히는 모습은,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극단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 정치가 소모적인 이념 논쟁의 늪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청신호라 할 수 있다.

국민의힘의 과제

민주당이 '변혁적 중도'를 표방하며 주류화되는 흐름 속에서 국민의힘의 과제는 더욱 명확하고 동시에 더욱 복잡해진다. 민주당이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고 '유능한 중도'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국민의힘에게 기존의 전략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과연 국민의힘은 이 '변혁적 중도' 시대의 개막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할까? 단순히 민주당의 뒤를 쫓아 '우리도 중도'라고 외치는 것은 어설픈 모방에 그칠 뿐이다.

국민의힘은 전통적인 보수적 가치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어떻게 중도층의 마음을 얻고, 민주당과의 차별점을 부각하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지가 중요할 것이다. 국민의힘만의 '중도'적 가치와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민주당이 '민생 안정'을 통해 중도층을 공략한다면, 국민의힘은 '경제 활성화'나 '자유 시장 경제'와 같은 보수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차별점을 둘 수 있다. 규제 혁파, 기업 친화 정책, 시장의 자율성 존중 등을 통해 경제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곧 민생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설득력 있게 펼쳐야 한다. 또한, 민주당의 '한반도 평화' 전략에 맞서 안보와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실질적인 외교적 노력을 통해 평화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힘에 의한 평화'가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국제사회와의 연대와 전략적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안보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변화에 대응하여 자체적인 '중도' 전략을 고민하거나,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면서도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선거 승리를 넘어, 한국 정치의 균형과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과제다. 민주당의 '주류화'가 가져올 정치 지형의 변화 속에서 국민의힘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 그리고 그 선택이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는 흥미롭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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