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과 '오징어 게임', 한국 사회의 파시즘적 경향을 말하다

한강 작가의 소설들과 전 세계를 들었다 놓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이 둘은 기묘하게도 한국 사회의 깊은 속살을 파고든다. 특히 인간성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력의 서사, 그리고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 파시즘적 경향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서 '파시즘적 경향'이라 함은 군사 독재 같은 특정 정치 체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개인의 존엄은 뒷전이고, 맹목적인 집단 순응과 끝없는 경쟁이 미덕으로 둔갑하는 우리 사회의 어둡고 병든 단면들을 지칭한다.
한강의 문학, 폭력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을 그리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그 중심에는 항상 극단적인 폭력과 그 폭력이 남긴 트라우마가 있다. 이 폭력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어떻게 파괴하고 뒤틀리게 하는지, 마치 해부하듯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채식주의자』를 보라. 지극히 평범했던 여성이 폭력적인 사회적 기대와 가족의 억압에 맞서다 결국 채식을 넘어 스스로 비인간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는 집단적 폭력, 혹은 무관심이라는 폭력 앞에 선 개인이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저항하는지 보여준다.
『소년이 온다』는 또 어떤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국가라는 거대한 폭력이 어떻게 무고한 시민들을 짐승 취급하고 인간성을 말살시키는지 생생히 고발한다. 덧붙여, 한강 작가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또 다른 비극적 역사를 시를 통해 품어내기도 했다. 그녀의 시 '죽은 자들의 에필로그'는 제주의 영혼 없는 비석들 위로 죽은 자들의 외침이 깃든다고 노래하며, 4.3의 아픔 또한 국가 폭력과 역사적 망각이 남긴 깊은 상흔으로 본다.
이 소설과 시에서 폭력은 단순히 주먹질이나 총질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영혼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시스템화된 기계적인 작동 방식에 가깝다. 한강은 이런 폭력 속에서 개인이 겪는 무력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숭고한 저항을 동시에 그려낸다. 폭력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녀의 소설과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폭력에 얼마나 무감각해져 있는가, 그리고 그 폭력의 과거가 현재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가.
'오징어 게임',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잔혹극
'오징어 게임'은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잔인한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빚더미에 앉아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오직 돈 때문에 목숨을 건 잔인한 게임에 뛰어드는 모습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거대한 풍자극이다. 게임의 규칙은 '공정'을 외치지만, 그 속내는 약육강식의 비정함을 숨기고 있다. 참가자들은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며 철저히 비인간화된다.
놀라운 건 참가자들이 게임의 잔혹성을 뻔히 알면서도, 심지어 게임장을 벗어났다가도 결국 다시 돌아와 그 살육 시스템에 스스로 몸을 던진다는 점이다. 이는 외부의 강압이 아니라, 내면에 자리 잡은 욕망과 절망이 결합하여 스스로 잔인한 시스템에 복종하게 만드는 현대 사회의 교활한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오징어 게임' 속 VIP들이 참가자들의 죽음을 구경하며 즐기는 모습은, 극단적인 경쟁 속에서 타인의 고통이 그저 '볼거리'로 소비되고, 가진 자들에게 약자의 희생이 너무나 쉽게 정당화되는 우리 사회의 병든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점에서 '오징어 게임'은 현대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파시즘적 성향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과도한 경쟁, 획일적 집단주의, 그리고 '성공'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존엄이 너무나 쉽게 짓밟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승자독식의 구조가 심화될수록, 패자는 철저히 소외되고 비인간화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사회 구성원들이 무감각해지거나, 심지어 동조하게 되는 현상은 파시즘의 본질인 **'타자화'와 '맹목적인 규율 복종'**의 섬뜩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한국인의 파시즘적 경향,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
한강의 소설들과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는 폭력과 비인간화의 서사는, 한국 사회가 겪어온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권위주의 시대, '국가 발전'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되고 국가 주도의 폭력이 용인되었던 경험은, 효율과 경쟁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 사회의 모습과 묘하게 겹친다. 마치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를 좀먹는 것처럼 말이다. 광주 5·18, 제주 4.3 같은 국가 폭력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 비극이 남긴 교훈을 망각할 때, 우리는 현대 사회의 극심한 경쟁 속에서 쉽게 비인간화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물론 한국 사회를 파시즘 국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 끈끈한 집단주의, 획일적인 성공 지상주의, 그리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가혹한 시선 등은 때때로 개인의 다양성과 존엄성을 억압하고, 비인간적인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오징어 게임'처럼 타인의 죽음을 대가로 한 생존 게임에 스스로 뛰어드는 역설적인 현실을 낳을 수도 있다.
한강 작가는 과거의 폭력과 트라우마 속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색하고, '오징어 게임'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어떻게 비인간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두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효율과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그저 숫자로, 혹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물음은 단순히 작품을 넘어 우리 사회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이다. '파시즘적 경향'은 거창한 이념의 형태가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상실, 약자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대한 무비판적인 순응이라는 형태로 스며들 수 있다. 한강의 문학 작품과 '오징어 게임'이 던지는 서늘한 경고에 귀 기울여, 인간성을 지키고 존엄을 회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