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 상황은 단지 혼란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근본 토대를 위협하는 중대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파시즘이 발흥하는 네 가지 조건—다수의 무관심, 폭력의 묵인, 기득권의 야합, 낡은 법과 제도의 방치—은 단순한 이론적 분석이 아니라 현실적 경고로 다가온다. 최근의 정치 담론과 권력의 재편 흐름은 파시즘적 전조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우리에게 긴장감을 요구한다.
1. 다수의 무관심: 침묵이 부른 침투의 허점
파시즘은 결코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등장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파시즘은 한 번도 선거에서 과반을 넘은 적이 없다. 항상 소수지만 열정적인 지지층이 중심이 되어, 무관심하거나 피로감에 젖은 다수의 시민 사이로 파고들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 역시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이 팽배해 있으며, 특히 청년 세대는 정치 효능감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무관심은 국가적 위기의 순간에 극단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
예를 들어, 최근 주요 정치 사안에 대한 청년층의 저조한 투표율과 사회 현안에 대한 무관심은 민주적 견제력을 약화시켰다. 국민이 감시자의 역할을 포기할 때, 극단 세력은 이를 틈타 조직적 선전, 혐오 정치, 권력 집중 등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한다. 특히 극우적 선동을 일삼는 일부 세력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활개치는 모습은 이를 방증한다.
2. 폭력의 묵인: 공감에서 방조로, 방조에서 허용으로
폭력은 단지 물리적인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언어적 폭력, 혐오 발언, 협박, 가짜 뉴스 유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이들은 점차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용인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적 반대자를 향한 집단 린치,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언행 등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폭력적 분위기는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는 인식 아래 방치되기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폭력이 사회의 약자를 넘어서 보편적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결국 침묵하는 대중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폭력이 제도적으로 방치되고, 언론이나 정치권이 이를 조장하거나 방관할 때, 파시즘의 구조는 더욱 견고해진다.
3. 기득권의 야합: 권력 연장의 계산
극우 세력은 일관되게 자신들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행동하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득권 세력과 전략적으로 결탁하거나 이용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권력 유지와 경제적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극단적 주장과 선동을 이용해 대중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사회적 혼란을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 언론, 경제 권력은 극우 세력의 논리를 방조하거나 이용하면서 상호 보호막이 되어준다.
2023년 이후 드러난 검찰의 정치적 기획 수사, 언론의 편향된 보도 행태, 사법부의 선택적 개입 등은 이러한 극우-기득권 연합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법 시스템을 활용해 정치적 정적을 탄압하고, 특정 사건을 프레임화하여 여론을 조작하며, 반대 세력을 '체제 파괴자'로 낙인찍는 방식은 모두 철저히 계산된 자기이익 중심의 행동이다. 이러한 유착 구조는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면서도 외형상 합법성을 유지하려 하기에 더욱 위험하다.
4. 낡은 법과 제도의 방치: 방파제의 붕괴
법과 제도는 파시즘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방파제이지만, 시대 변화에 뒤처진 법제도는 오히려 극단주의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법률 체계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유산에 기초하고 있으며, 시민의 기본권을 온전히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히틀러가 독일에서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33년 '국회의사당 방화사건(Reichstag fire)'이다. 당시 히틀러는 이 사건을 공산당의 소행으로 몰아 법적 근거 없이 긴급조치법(국가보호법)을 통과시켰고, 이를 통해 헌법적 권리를 정지시키며 독재를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제도가 극우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다.
오늘날 한국 사회도 이와 유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가짜 뉴스, 혐오 표현, 여론 조작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고, 법과 제도의 개혁은 정치적 셈법에 따라 지연되고 있다. 특히 사법 시스템이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거나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중립성을 상실할 경우, 법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패가 아니라 특정 세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 이러한 구조는 권력자가 위기 상황을 조작하거나 왜곡된 명분을 이용해 긴급 권한을 확보하려 할 때, 이를 제어할 제도적 장치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결론: 실천적 낙관과 이론적 비관 사이에서 깨어 있어야 할 시민
우리는 지금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파시즘의 징후는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단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정보의 진위를 분별하고, 혐오와 폭력을 거부하며, 공동체의 연대를 회복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정치적 피로감과 절망 속에서도, 깨어 있는 시민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다. “악은 지치지 않는다”는 말처럼, 우리 역시 지치지 않아야 한다. 그 시작은 ‘공감의 회복’이며, 다음은 ‘행동의 결단’이다. 지금은 공동체 전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회복하고 균형을 되찾아야 할 시기다. 시민 개개인의 건강한 삶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토대가 된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단지 한 명의 권력자가 아니라, 우리 안에 스며든 무관심, 방조, 침묵이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우리는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