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덫을 넘어서: 6.3 선택의 힘

여러분, 우리는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아마도 '자유 수호를 위한 숭고한 희생'쯤으로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의 통찰력 있는 저서 '베트남 전쟁: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은 그 익숙한 서사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전쟁 이야기를 넘어,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우리의 현실을 왜곡하고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놀랍게도, 2025년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는 '빨갱이', '종북', '공산주의'라는 소음이 난무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합리적인 토론과 비전 제시 대신, 구시대적인 혐오와 낙인이 여전히 정치적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자는 어디서 왔을까? 다가오는 6.3일 대통령 선거는 단순히 새 지도자를 뽑는 행사를 넘어선다. 우리는 이 깊이 뿌리내린 국가 이데올로기의 유산을 직시하고,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 그리고 파병의 그림자

박태균 교수는 한국의 베트남 파병이 '자유 진영의 대의'라는 그럴듯한 포장지 안에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 날카롭게 파헤친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미국의 '승인'이었다. 국제 사회,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정통성 인정 없이는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불안정성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그는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베트남 파병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당시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의 파병을 간절히 원했던 상황은 박정희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아직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인도차이나 지역에 한국군 파병 의사를 지속적으로 표명하며 미국의 환심을 사려 했다.

중요한 것은, 이 파병 결정이 박정희 개인의 정치적 필요와 맞물려 한국 사회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력하게 주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국의 반공주의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히스테리컬한 광기를 띠었다. 이는 단순히 북한과의 대결 구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박정희 자신에게 '빨갱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 이력을 덮고, 정권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반공을 맹렬히 외쳤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 안보를 위해 '반공'을 국가의 최고 가치로 둔갑시켰고, 베트남 파병은 그 '반공 정권'의 강력한 증명서가 된 것이다. '자유 수호'라는 거창한 명분 뒤에는, 정권 유지를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국가가 특정 이념을 어떻게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사용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데올로기의 일상화와 내면화: '병영 사회'의 탄생

베트남 전쟁은 단순히 먼 나라의 전투가 아니었다. 이 책은 그 전쟁이 한국인의 일상 속으로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 섬뜩하게 보여준다. 맹호부대 환송을 위해 여의도까지 나가 조그만 태극기를 흔들던 초등학생들의 모습,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그렸던 '때려잡자 공산당'이라는 반공 포스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이승복 동상이 모든 학교에 세워졌던 기억...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국민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스며들어 내면화되는 과정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빨갱이'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적개심을 주입받으며 자란 세대들에게, 베트남 전쟁은 언제든 우리 코앞에 닥칠 수 있는 현실적인 위협으로 각인되었다. 국가가 주입한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송두리째 형성했고, 전쟁의 상흔은 정신적인 차원에서도 깊이 새겨졌다. '전쟁 나는 꿈'을 꾸고 미술 시간에 반공 포스터를 그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개인의 삶을 지배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박태균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베트남 전쟁과 김신조 사건의 충격적인 연결고리를 폭로한다. 호찌민이 김일성에게 한국군 때문에 못 살겠다며 파병을 요청했고, 김일성이 '박정희가 더 이상 파병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겠다'고 말한 뒤 김신조 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베트남 전쟁이 단순히 해외 전쟁이 아니라, 한반도 내부의 남북 대결과도 끔찍하게 얽혀 있었음을 보여주는 섬뜩한 증거다. 당시 한국 사회는 사실상 '내전 상태'나 다름없었다. 무장 간첩과의 교전이 108회에 달했다는 기록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박정희 정권은 바로 이 '내전과 유사한 상황'을 영구 집권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 한국 사회를 '기형적인 국가', 즉 '병영 사회'로 재편했다. 그리고 이때 만들어진 제도와 관습은 놀랍게도 오늘날까지 그 질긴 잔재를 드리우고 있다.

  • 주민등록증 (1968년 제정): 명분은 '간첩 색출'이었다. 신분증이 없는 자는 간첩으로 몰리는 시대, 국민을 '우리 편'과 '적'으로 철저히 구분하고 통제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신분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 국민교육헌장 (1968년 선포): 모든 국민을 '정신 무장'시켜야 한다는 미명 아래, 국가가 원하는 이념과 가치를 주입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했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과 같은 구호는 개인의 자율적 사고를 억압하고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였다.
  • 예비군 훈련 및 군사 훈련(교련): 예비군 훈련이 시작되고, 1969년부터는 고등학교 교련이 의무화되면서 학교는 말 그대로 '병영'이 되었다. 학생들이 연대장, 대대장을 맡고 군대식으로 통제받던 시절은 사회 전반에 군사주의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명백했음을 보여준다.

1968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가 '해방의 들판'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오히려 '억압의 늪'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학생 운동과 민주화 요구는 '빨갱이'라는 낙인 아래 억압되었고, 이데올로기적 통제 속에서 한국인들은 전 세계의 보편적 흐름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형'되었으며, 이는 이후 20~30년간 이어진 군사독재의 견고한 토대가 되었다.

6.3일 대통령 선거와 이념의 덫 극복의 과제

박태균 교수의 '베트남 전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역사적 맥락은 다가오는 6.3일 대통령 선거의 의미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보라. 우리는 2025년에도 여전히 정치적 논쟁 속에서 '빨갱이', '종북'이라는 낡은 이데올로기적 낙인이 버젓이 등장하고, 합리적인 정책 논의는 실종된 채 감정적 대립으로 치닫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 국가 이데올로기가 남긴 짙은 그림자가 오늘날 민주주의의 성숙을 가로막는, 너무나도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이러한 이념의 덫은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진정한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단순히 '누가 될 것인가'를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과거의 이데올로기적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민주주의와 포용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지 스스로를 시험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유권자 여러분, 이제는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비전과 정책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적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판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더 이상 '적'을 상정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정치권 또한 마찬가지다. '반공' 프레임이나 '빨갱이' 낙인과 같은 구시대적 언어를 당장 버리고, 국민의 삶과 직결된 실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미래 지향적인 담론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6.3일 선거를 통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역사를 통해 이념의 허상을 직시하다

결론적으로, 박태균 교수의 '베트남 전쟁'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국가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고, 개인의 삶을 짓누르며, 심지어 역사를 은폐할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휘황찬란한 성과 뒤에 감춰졌던 베트남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 파병 전사들의 희생, 그리고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라는 불편한 진실들은 국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반쪽짜리 기억'에 불과했다. 이 '반쪽짜리 기억'은 우리 사회의 깊은 상흔으로 남아 여전히 현재를 규정하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과거를 직시하고,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허상을 깨뜨리는 용기에서 시작될 거다. 박태균 교수의 이 책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한국 사회에 절실한 비판적 성찰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일깨운다. 6.3일 대통령 선거는 바로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지 않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성숙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한국 사회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념의 덫을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한국의 역사를 이해하고,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할 수 있을 거다. 여러분의 선택이 바로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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