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왕과 김문수, 흔들리는 나침반이 부른 두 비극

정치판이라는 바다는 언제나 잔잔할 틈이 없다. 여론이라는 거센 파도, 예측 불가한 정책 논쟁,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위기의 태풍 속에서 지도자들은 허우적거린다. 이 와중에 이들이 의지해야 할 단 하나의 기구는 바로 정체성이라는 나침반이다. 그런데 그 나침반의 바늘마저 제멋대로 돌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어떤 풍경을 목격하게 될까?
성경 속 사울 왕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 정치판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울 왕은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백성들의 환호 속에 왕위에 올랐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여론에 휘둘렸고, 결국 하나님의 신임까지 잃었다. "여호와께서 번제보다 순종을 더 기뻐하신다"는 사무엘의 뼈아픈 일침은 사울의 몰락을 결정지었다. 그는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로 이도 저도 아닌 길을 택하다 왕좌를 잃었다.
끝없이 변주하는 자아의 교향곡
돌아보면, 우리 정치사에도 사울 왕 같은 인물은 적잖았다. 그 중 김문수 후보의 행보는 단연 눈에 띈다. 한때 노동운동의 전설적 아이콘, 민주화의 전사로 불리던 그가, 어느새 유튜버로, 특정 종교 지도자의 추종자로, 또 현직 대통령의 그림자 멘토로 등장한다. 그의 정체성은 마치 이도 저도 아닌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다.
"많이 가지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더 색깔이 없다"는 말이 있다. 김 전 의원은 지금 그 말을 몸소 실천하는 듯하다. 한때 붉은 깃발을 들던 그가, 어느새 다른 깃발을 쥐고 카메라 앞에 선다. 대중은 묻는다. "저 사람,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혼란은 곧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
나침반 없이 떠다니는 배는 결국 난파한다
정체성을 잃은 지도자는 결국 외부의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한때 김 후보는 "지금이 인생 최고의 전성기"라며 스스로를 자찬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항해자보다는, 순간의 쾌락을 즐기는 여행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정광훈 목사의 강렬한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신호에 따라 손쉽게 방향을 바꾸는 모습은, 내부에 확고한 '진북'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쯤 되면, 과거 사울 왕이 블레셋 군대를 두려워해 금지된 제사를 직접 올린 사건(사무엘상 13장)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두려움과 불안은 언제나 나침반을 망가뜨린다.
당신의 나침반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정치라는 긴 항해에서 지도자의 정체성은 단순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사울 왕처럼 흔들리다 끝내 몰락할 것인가, 아니면 다윗처럼 방향을 잃지 않고 신뢰를 쌓아갈 것인가.
김문수 전 의원의 모습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나침반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결국, 정체성을 잃은 리더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도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역사는 늘 뚜렷한 방향을 가진 이들의 이름만을 남겨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