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를 양성하는 한국 교육

김누리 교수의 통찰을 빌려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참으로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라는 명제 아래, 지금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어쩌면 의도치 않게 파시스트적 습성을 우리 아이들의 내면에 깊이 심어주고 있다는 섬뜩한 비판적 성찰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과도한 경쟁을 넘어선 이야기다. 파시즘의 핵심 원리라고 알려진 '경쟁, 우열, 지배'가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마치 숨 쉬듯이, 뼛속 깊이 체화되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이 시스템은 본디 개인의 잠재력을 꽃피우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협력을 가르쳐야 할 교육의 숭고한 사명을 잊은 지 오래다. 오직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인간성을 사정없이 마모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경쟁, 우열, 지배: 파시즘의 씨앗을 뿌리는 교육

한국의 교육은 어떤가? 초등학교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대학교 입시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기까지, 무려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학생들을 끊임없는 경쟁의 굴레 속으로 무자비하게 몰아넣는다. 이 경쟁은 단순히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노력이 아니다.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개인의 가치를 재단하고, 줄을 세워 서열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이들은 시험 점수, 내신 등급, 수능 백분위 같은 숫자로 환원된 지표를 통해 시시각각 우열을 가려진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 방식은 소수의 '엘리트'만이 성공의 단맛을 보고, 대다수의 '낙오자'는 뒤처지는 구조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만든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이 타인을 협력과 상생의 동반자로 보겠는가? 아니다. 반드시 이겨야 할 경쟁의 상대로 인식하게 만들고,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타인을 짓밟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 사고방식은 파시즘이 맹렬히 추구했던 강자독식의 논리, 즉 약육강식의 세계관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는 결국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무한 경쟁의 풍토를 더욱 깊숙이 뿌리내리게 한다.

특히, 이 살벌한 경쟁에서 '종교 1등'이라는 표현처럼 최상위권에 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그들은 현재 교육 시스템의 논리를 가장 완벽하게 체득하고 내면화한 자들이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극도의 효율성과 오직 결과만을 숭배하는 파시스트적 습성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며,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맹목적이고 비판 없는 신념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러한 습성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나 도덕적 타락의 문제가 아니다. 오직 경쟁과 승리만을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나 배려보다는, 그들의 실패를 개인의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이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엘리트의 내면에 남겨진 파시즘의 유산과 비상식적인 행동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파시스트적 습성'을 내면화한 자들이 한국 사회의 이른바 '엘리트'가 되어 사회의 핵심 요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틀어쥐고, 정책을 만들고,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선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은 당연히 사회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다시금 경쟁과 우열, 지배의 논리를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오직 효율성과 성과만을 강조하는 정책들, 약자에게 더 큰 책임을 떠넘기는 사회적 분위기 등은 바로 이러한 엘리트들의 내면화된 파시스트적 습성이 현실에서 발현된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특히, 12.3 계엄사태와 같은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이러한 엘리트들의 비상식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은 그들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파시스트적 습성이 어떻게 현실에서 드러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시 각료들은 민주적 절차와 국민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이 권력의 편에 서서 계엄령을 옹호하거나 침묵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 언론 엘리트들은 어떤가? 진실 보도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은 내팽개치고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자처하며 여론을 왜곡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다. 법조계 엘리트들 또한 법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외면하고 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침묵하거나 심지어 동조함으로써 법치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심지어 종교계 엘리트들마저도 사회의 도덕적 양심으로서 불의에 맞서기보다는, 현실 권력과의 타협을 통해 자신들의 안위와 교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이러한 엘리트들의 행태는 그들이 교육을 통해 체득한 '경쟁에서의 승리'와 '지배 구조의 내면화'가 개인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을 압도했음을 명백히 시사한다. 그들은 시스템 내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학습된 효율성과 결과 지상주의가, 결국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와 같은 더 큰 가치를 외면하게 만든 것이다. 김누리 교수의 지적처럼,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떠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파시즘을 그저 역사 속의 낡은 과거로 치부하며 극복했다고 자부할 때조차, 그 검은 그림자가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인 교육을 통해 은밀하게 재생산되고 있을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 구성원 간의 연대와 신뢰를 산산조각 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성찰과 변화를 향한 절박한 요청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 교육이 양성하는 '엘리트'의 내면에 깊이 박힌 파시스트적 습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절실히 필요하다. 단순히 입시 경쟁을 조금 완화하는 수준을 넘어,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과 가치를 완전히 새로 정립해야 한다. 교육은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동시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인간 존중, 다양성 인정, 협력과 공존의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이 지금 당장 시급하다. 이는 학생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무의미한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 교육은 더 이상 개인의 성장이나 사회 발전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야만적인 방식으로 인간성을 훼손하고,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독소로 작용하고 있다. 무한 경쟁은 창의성을 고갈시키고, 학생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교육이 파시즘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교육계만의 과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절박한 요청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투자이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경쟁이 아닌 공존을, 지배가 아닌 협력을 배우는 사회로 나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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