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연] 대중이 만든 구원자의 탄생과 몰락: 한국 정치 반복된 서사

우리는 왜 반복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가? 누가 와서 이 모든 걸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 정치판은 늘 그런 열망이 맴도는 공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시대적 공백 속에서 등장했다. 정치 바깥에서, 거침없는 언어로, 기득권을 향해 칼을 들이댄 전직 검찰총장. 그의 등장은 실망과 피로에 빠진 유권자들에게 시원한 자극이었다. 이재명 대표 역시 다른 결이지만,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 속에서 행정가적 실행력과 문제 해결사 이미지를 앞세워 부각되었다. 구원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을 기다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정치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보다는, 간단하고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인물을 선호한다. 경제가 흔들릴 때, 안보가 불안할 때, 불공정에 분노할 때, 사람들은 '강한 누군가'나 '실행력 있는 해결사'를 찾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가 해결하겠다", "저놈들 다 잡겠다" 되돌아보면 윤석열은 대중이 만든 신화였다. 이재명 대표는 "이거 제가 해봤다", "이렇게 바꾸면 된다"는 메시지로 대중의 불안과 답답함을 해소해주는 데 탁월하다. 그렇게 윤석열은 '정의의 사도', '강한 대통령'으로, 이재명은 '실행가', '문제 해결사'로 상징화되고 있다. 모두 대중의 욕망이 만들어 낸 신화들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단순하지 않다.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타협과 조율이 필요한 공간이다. 말 몇 마디나 개인의 실행력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후 당연히 어려움을 겪는다. 정책은 지체되고, 정치는 복잡해진다. 이재명 대표 또한 야당 리더로서, 혹은 미래 권력으로서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힌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안 바뀌냐고?" 혹은 "왜 약속대로 안 되냐고?". 하지만 정치란 원래 느리고 타협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구원자 신화의 함정이 드러난다. 누군가가 와서 단숨에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는 기대는 결국 실망으로 귀결된다.

현재 대중의 욕망은 이재명 대표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는 '할 수 있는 사람', '기존 정치 문법을 뛰어넘는 인물'로 간주되며,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기대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일 경우, 언젠가는 실망으로 전환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실망은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쏠렸던 기대가 빠르게 실망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이재명 대표에게 집중된 욕망 역시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며, 이는 곧 구원자 신화가 반복되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패턴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역사적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에게 몰렸던 대중의 욕망은 분노로 바뀌어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를 깨뜨릴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지만, 예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리를 말했고, 사랑과 회개의 길을 걸었다. 기대와 현실이 충돌했을 때, 그 열광은 분노로 바뀌었다. 한국 정치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과도한 기대는 예언이 아니라 실망의 씨앗이 되며, 구원자에게 몰린 욕망은 결국 또 다른 배척의 날을 예고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려보자. 동물들이 인간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세우지만, 결국 또 다른 권력자에게 순응하게 된다. 이상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타락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구조는 한국 정치에도 반복된다. 박정희, 노무현, 문재인까지. 우리는 기대하고, 지지하고, 실망하고, 다시 또 다른 구원자를 찾는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쏠렸던 기대와 그에 대한 실망, 그리고 이재명 대표에게 다시 투영되는 기대 또한 이 반복되는 서사 속에 놓여 있다.

문제는 정치인보다 대중에게 있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허리이지만, 오늘날의 정당은 그 기능을 상실했다. 정책은 사라지고, 인물에 대한 이미지와 감정만 남았다. 그러니 유권자는 정당이 아닌 인물을 찾고, 정치 전체는 이벤트처럼 소비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몰렸던 기대, 그리고 이재명 대표에게 투영되는 욕망은 결국 정당정치의 실패를 반영한다. 우리가 시스템을 통해 정치를 하지 않으면, 결국 특정 인물에게 기대게 되고, 이는 민주주의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우리를 구할 것인가?" (윤석열이든 이재명이든 다른 누구든 특정인에게 기대는 물음)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함께 만들 것인가?"로. 정치란 누군가의 결단이나 리더십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고, 구조와 제도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라는 인물 개인보다, 그들을 '구원자' 혹은 '해결사'로 만든 대중의 욕망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바로 그 욕망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가 특정 인물 신화 속에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진짜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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