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연] 현실판 ‘적과 흑’: 법복은 왜 검은가?

“진실은 감추는 데서 힘을 얻는다.” – 스탕달, 『적과 흑』

2025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사법 사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계급 사회의 위선 속에서 출세를 위해 군복(적)과 성직복(흑)을 갈아입은 쥘리앙 소렐처럼, 오늘 우리 앞의 현실에서도 법복이라는 상징이 더 이상 정의와 중립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권력 재편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 시작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시도의 실패였다. 무력으로는 더 이상 민심을 장악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권력의 시선은 ‘검은 법복’으로 옮겨졌다. 법과 정의라는 외양을 두르고 벌어진 사법 결정들은, 의심과 불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첫 번째 장면은 지귀연 판사의 ‘시간 계산’ 판결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산정하며, 통상적인 0시 기준을 무시한 전례 없는 해석을 적용해 석방 결정을 내렸다. 이는 단순한 법리 판단이 아니라, 결과를 염두에 둔 정치적 행위처럼 읽혔다. 『적과 흑』 속 쥘리앙이 미사 의복을 입고 세속 권력에 다가가는 장면이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법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이어지는 검찰의 대응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항고를 포기했다. 검찰이 마땅히 지켜야 할 절차적 대응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침묵이 아니라, 암묵적 동의로 읽힌다. “성공하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는 자이고,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원하지 않는 것을 얻는 자”라는 스탕달의 말처럼, 정의의 기관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원하는 절차를 버린 셈이다.

다음 수는 헌재 인선을 통한 사법 체계의 재편 시도였다. 한덕수 국무총리 권한대행은 대통령 직무 정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관 임명을 밀어붙였다. 이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헌재의 중립성을 무너뜨리고, 향후 사법 결정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쥘리앙이 귀족 가문과 교회를 통해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하려 했던 시도와 같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이재명 대표 사건 파기환송 판결이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유죄 취지'라는 표현을 담아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판결문의 표현 하나하나가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되는 가운데, 이 결정이 내려진 지 불과 1시간 만에 한덕수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 우연이라 보기엔 너무 정교한 타이밍이었다. 사법 판단과 정치적 행위가 한 세트처럼 작동하는 이 장면은, 소설 속 쥘리앙이 수첩에 적어가며 계산한 사회적 타이밍과 겹쳐 보인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한마디가 있었다. “나는 이겼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발언이 아니었다. 법적 책임이 아직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시점에서, 그는 승리를 선언했다. 그것은 법의 판단에 의한 무죄 선언이 아니라, 사법 구조를 활용해 정치적 복귀를 이룬 것에 대한 자축이었다. 『적과 흑』 속 쥘리앙이 자신의 계략이 성공했을 때 느꼈던 “나는 나 자신을 팔았고, 그 대가로 세상이 나를 환영했다”는 심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순간이었다.

법복은 왜 검은가. 원래는 권위와 중립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서 검은 법복은 그림자를 숨기기에 적합한 색으로 작동한다. 정의를 가장한 정치, 중립을 가장한 야망이 법복 뒤에 숨어 있다면, 우리는 지금 ‘적과 흑’의 현실판을 살고 있는 것이다.

법의 탈을 쓴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목격한 지금, 시민의 질문은 더욱 명확해진다. 대한민국의 사법은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법복 뒤에 숨은 ‘검은 계산’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이 불투명한 현실을 어떤 눈으로 감시하고, 어떤 마음으로 바로잡아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투명한 법 위에 선다. 그 법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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