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맷돌에 갈려버린 한국사회의 가치들

칼 폴라니의 역작 『거대한 전환』은 우리에게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한다. 흔히 자본주의의 병폐를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로 규정하지만, 폴라니는 그보다 더 섬뜩한 문제, 즉 '사탄의 맷돌'을 경고한다. 이 맷돌은 모든 소중한 가치를 무자비하게 갈아 넣어 오직 하나의 가치, 바로 금전적 가치로 환원시키는 잔혹한 기제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건대, 이 사탄의 맷돌이 지구상에서 가장 맹렬하게 돌아가는 곳이 바로 한국 사회다.
금전 만능주의가 잠식한 다양한 가치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가 어디 돈뿐이던가? 도덕적 가치, 문화적 가치, 윤리적 가치, 역사적 가치, 사회적 가치, 생태적 가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 모든 가치들은 사탄의 맷돌에 던져지는 순간, 오직 '돈이 되느냐 마느냐'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평가된다. 돈 이외의 가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는 이 현실은 충격을 넘어선 절망을 안겨준다. 도덕적 가치는 정직과 신뢰를 근간으로 하지만, 금전적 이득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기업의 불법적인 이윤 추구, 정치권의 추악한 부패 스캔들, 심지어 개인 간의 뻔뻔한 사기 행각까지, 이 모든 것이 도덕적 가치가 사탄의 맷돌에 갈려버린 적나라한 증거다.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신뢰 자본은 바닥나고, 불신만이 만연하는 삭막한 사회가 된다.
문화적 가치는 한 사회의 정체성과 깊이를 담아내지만, 상업적 성공 여부로만 재단되어 본연의 예술적, 역사적 의미를 상실한다. 전통 예술은 설 자리를 잃고, 유산 보존보다 개발 이익이 우선시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 뿌리를 송두리째 흔든다. 생태적 가치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환경 파괴가 버젓이 묵인되거나 심지어 정당화된다. 미세먼지 문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자연 훼손은 환경 보호의 중요성이 금전적 이익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회적 가치는 공동체의 연대와 상생을 의미하지만, 무한 경쟁 속에서 이웃과의 관계는 파편화되고,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오직 개인의 물질적 성공만이 맹목적으로 강조된다. 이는 양극화 심화, 사회적 불평등 증대, 그리고 소외 계층의 고통을 외면하는 비정한 결과를 낳는다.
금전 만능주의가 낳은 사회적 병폐와 정신적 빈곤
이러한 금전 만능주의는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범죄의 근본 원인이 된다. 사기, 횡령, 배임 같은 경제 범죄는 물론이고, 심지어 존속 살해나 아동 학대와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의 배후에도 돈이 도사리고 있다. 돈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생명까지 경시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범죄들은 단순히 몇몇 개인의 일탈을 넘어, 금전적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사회 구조적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법과 윤리마저 돈의 논리에 의해 재단되거나 교묘하게 회피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사회 질서와 정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 다른 모든 고귀한 가치들이 금전적 가치에 의해 완전히 짓눌리고 유린당하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토대를 뿌리째 흔든다.
한국인들이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예술적으로 빈곤하다는 지적은 이러한 사탄의 맷돌이 낳은 비극적인 결과다. 사람들의 대화 주제는 오직 부동산, 주식, 자녀의 학벌, 그리고 물질적인 성공과 같은 금전적 가치에만 갇혀 있다. 이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 저하, 사회적 연대감 약화, 그리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탐색할 기회 상실로 이어지며, 결국 우리 사회를 더욱 삭막하고 황폐하게 만든다. 여가 활동조차도 '가성비'나 '투자 가치'로 평가되는 현실은 우리 삶의 질을 현저히 저하시키고, 진정한 행복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
종교 영역으로 침투한 '허구적 상품화'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허구적 상품화'의 논리가 이제는 종교와 신앙의 영역까지 침투했다는 점이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로서의 본질적 가치를 상실하고, 신도들을 '소비자'로, 예배를 '서비스'로, 심지어 영적인 경험이나 구원을 '상품'으로 여기는 경향이 나타난다. '축복'이나 '응답'이 물질적 성공과 동일시되고, 헌금은 일종의 투자 행위로 간주되는 왜곡된 신앙관이 팽배해진다. 교회의 규모나 재정적 성공이 곧 신앙의 척도가 되는 순간, 종교의 순수성과 초월적 가치는 사탄의 맷돌에 갈려버리고 만다. 이는 종교가 본래 지향해야 할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오히려 세속적 금전 만능주의를 강화하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사탄의 맷돌을 멈추기 위한 기독교적 공동체의 역할과 '거대한 전환'
결국, 사탄의 맷돌은 인간 본연의 다양한 가치들을 파괴하고, 오직 물질적 성공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든다. 이는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마저 가로막는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 사탄의 맷돌을 멈추고 금전적 가치 외의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회복하려는 범사회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이는 단순히 정책적 변화를 넘어, 우리 개개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과감한 전환을 요구한다. 특히, 기독교적 공동체는 이 사탄의 맷돌에 맞서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는 물질적 풍요를 좇는 세속적 가치관에 편승하기보다, 진정한 사랑과 나눔, 희생의 가치를 실천하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신앙을 통해 얻는 영적인 평안과 공동체적 연대를 그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 우선시하며, '돈이 되지 않는' 이웃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교회는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물질적 성공을 구원의 증표로 여기는 왜곡된 신앙을 경계하며, 금전 만능주의에 오염된 사회에 대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교육 시스템은 더 이상 입시 경쟁과 물질적 성공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전인적 인간을 양성하고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과감히 변화해야 한다. 미디어는 선정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내용을 지양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가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야 한다. 시민 사회는 자발적으로 연대하고, 물질적 가치에 경도된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며, 진정한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고, 경쟁보다는 상생을, 이기심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탄의 맷돌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거대한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피할 수 없는 과제다.